제철 어수리나물 효능과 봄을 담은 레시피로 무침 요리하는 방법
취나물이나 참나물, 냉이처럼 향이 있는 나물을 먹다 보면 처음 한두 번 씹었을 때보다 여러 번 씹은 뒤 입안에서 향이 더 뚜렷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혀가 맛에 적응해서 생기는 느낌만은 아닙니다.
씹는 동안 식물 조직이 부서지고 휘발성 향기 성분이 방출되며, 그 성분이 입에서 코로 이동하는 과정이 계속되기 때문인데요. 나물을 오래 씹을수록 향이 풍부해지는 과학적인 이유를 알아보겠습니다.
나물의 향을 만드는 데는 다양한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관여합니다. 하지만 나물을 입에 넣었다고 해서 향기 성분이 한꺼번에 모두 방출되는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는 식물 조직이라는 복잡한 구조 속에 존재합니다.
씹기 시작하면 치아가 잎과 줄기를 잘게 부수면서 음식 입자의 크기가 작아집니다. 그만큼 음식과 입안 공기가 만나는 표면적이 커지고, 식품 조직에 있던 휘발성 물질이 공기 중으로 이동하기 쉬워집니다.
실제 연구에서도 씹는 횟수와 저작 능력이 증가할수록 코 뒤쪽으로 전달되는 향의 강도가 증가하는 현상이 확인됐습니다.
쉽게 말하면 나물 한 줄기를 통째로 두었을 때보다 잘게 으깨 놓았을 때 향이 쉽게 퍼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오래 씹을수록 조직이 더 잘게 부서지고 향이 빠져나올 수 있는 면적도 커지는 것이죠.
우리가 흔히 음식의 '맛'이라고 표현하는 감각에는 후각이 상당히 큰 역할을 합니다. 단맛·짠맛·신맛·쓴맛·감칠맛 같은 기본적인 맛은 혀에서 감지하지만, 취나물 특유의 풀 향이나 향긋한 냉이 향 같은 복잡한 풍미에는 코가 중요합니다.
음식을 씹으면 방출된 휘발성 물질이 입안의 공기와 섞입니다. 이후 호흡하거나 삼키는 과정에서 이 물질들이 목 뒤쪽을 지나 코의 후각 영역으로 이동합니다. 이를 후비강 후각(retronasal olfaction)이라고 합니다. 음식 냄새를 코로 직접 맡는 것과는 이동 경로가 다른 셈입니다.
삼킬 때는 향기 성분이 코 쪽으로 전달되는 하나의 강한 '향 신호'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물을 천천히 씹고 삼킬 때 입안에서 느껴지는 향이 순간적으로 더 풍성해지는 것도 이런 원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씹기의 또 다른 역할은 침과 음식을 섞는 것입니다. 씹는 동안 나물은 점점 작은 입자로 변하고 침과 섞여 삼키기 좋은 음식 덩어리가 됩니다. 이 과정에서 향기 성분은 음식과 침, 입안의 공기 사이를 이동합니다.
침은 단순히 음식을 축이는 물이 아닙니다. 침 속 단백질과 효소는 일부 향기 물질과 상호작용해 향이 공기 중으로 방출되는 속도와 양을 바꿀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같은 나물을 먹더라도 침의 양이나 씹는 방법에 따라 향을 느끼는 정도가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오래 씹는다고 모든 향기 성분이 끝없이 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향 성분은 빠르게 방출되고 다른 성분은 천천히 나오며, 일부는 침이나 식품 성분에 붙잡힐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물의 향은 씹는 동안 강도뿐 아니라 향의 구성 자체도 시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더 흥미로운 현상은 식물 조직이 파괴된 뒤 일어나는 효소 반응입니다. 모든 나물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 식물은 평소 서로 떨어져 있던 효소와 전구물질이 조직 손상으로 만나면서 새로운 향이나 매운맛 성분을 만들어냅니다.
대표적인 예가 겨자과 식물입니다. 이들 식물에는 글루코시놀레이트와 미로시나아제(myrosinase)가 존재하는데 정상적인 조직에서는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씹거나 자르면서 세포가 손상되면 둘이 만나 반응하고, 이소티오시아네이트를 비롯한 여러 분해산물이 만들어집니다. 이 과정은 겨자과 채소 특유의 톡 쏘고 알싸한 풍미와 관련됩니다.
일부 채소에서는 씹기가 이미 존재하던 향을 꺼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풍미 물질을 만들어내는 화학 반응의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메커니즘을 모든 산나물이나 나물류에 그대로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식물 종류마다 갖고 있는 효소와 향 전구물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연결하면 이유가 명확해집니다. 씹기 → 식물 조직 파괴 → 표면적 증가 → 휘발성 성분 방출 → 침과 혼합 → 코 뒤쪽으로 향 전달이라는 과정이 이어집니다. 여기에 식물 종류에 따라 조직 손상으로 새로운 풍미 성분이 생성되는 반응까지 더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향긋한 나물을 급하게 삼켰을 때와 충분히 씹었을 때 풍미가 다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향이 섬세한 나물이라면 몇 번 씹고 바로 삼키는 것보다 천천히 씹으면서 코로 자연스럽게 호흡하면 후비강으로 전달되는 향을 좀 더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습니다.
다만 '20번 또는 30번 이상 씹어야 향이 가장 강하다'처럼 모든 나물에 적용할 수 있는 정해진 횟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물의 종류와 조리법, 조직의 질감, 향기 성분의 종류는 물론 개인의 씹는 습관과 침 분비량에 따라서도 향 방출이 달라집니다.
같은 나물도 생으로 먹을 때와 데쳐서 먹을 때 향이 달라지는 이유 역시 이 원리와 연결됩니다. 가열하면 식물 조직이 부드러워지는 동시에 일부 휘발성 물질이 날아가거나 효소가 활성을 잃을 수 있습니다.
효소 반응으로 풍미 성분이 생성되는 식물은 가열 온도와 시간에 따라 향의 양상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겨자과 채소의 경우 조리 과정이 미로시나아제 활성과 글루코시놀레이트 분해산물 생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결국 나물을 오래 씹을수록 향이 강해지는 핵심은 '향을 더 많이 꺼내고 코까지 전달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치아가 조직을 잘게 부수고, 침과 섞이면서 향기 성분이 방출되고, 호흡과 삼킴을 통해 그 향이 코 뒤쪽의 후각 수용체에 도달하는 것이죠.
다음에 향긋한 봄나물을 드신다면 조금 천천히 씹어보세요. 평소 지나쳤던 향의 변화가 훨씬 선명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